March 22, 2026 • ☕️ 4 min read
AI가 아닌 주제, 또는 AI의 손길이 닿지 않은 글을 보기가 어려워진 요즘
나 역시 올해를 시작하고 두어 달 간, 미친듯이 단축된 개발 요구 시간에 AI를 쓰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어 정신없이 AI에게 일을 던져주며 일하다 보니 더 이상 아무것도 쓸 것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엇을 쓸까, 끝까지 AI와는 관련 없는 글을 써보려 했지만 어느 때보다도 정신없이 일했던 지난 몇 주 간 내가 한 것은 AI를 엄청나게 돌렸던 것 뿐. 몇 달 단위로 새롭게 나오던 개발 프레임워크나 기존 툴의 신규 버전, 새로운 아키텍처들은 하루가 달리 기능이 추가되는 AI 도구의 질주에 그 가치를 깎여버린지 오래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개발자로 일하는 내가 가장 AI 친화적이고, 그만큼 누구보다도 AI를 잘 쓸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같다. 물론 실제로 그런 사람들도 많다. ‘딸깍’ 한 번에 그동안의 모든 과업들을 대체하는 사람들.
하지만 그만큼이나 나와 같은 하소연을 하는 사람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 같다. 아니, 사실은 AI로 완전히 다른 세상을 날라다니는 몇 명의 뛰어난 개발자들보다, 급격히 바뀌어버린 시대에 자신이 서있던 곳에서 휘청거리며 또 다른 고민들에 빠진 개발자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실제로 요즘엔 누구든 만나기만 하면 이런 얘기 뿐이다.
사실 편하긴 하다. 내가 해왔던 일의 80%는 벌써 대체가 된 것 같다. 새로운 피쳐 개발이 들어오거나, 운영 이슈가 생기면 어떻게 작업할지 고민하기보단 AI에게 먼저 던진다. 정제되지 않은 말로. 그리고 AI의 답변을 기다리며 잠시 한 숨 돌린다. (사실, 이 시간에도 얼마든지 다른 AI를 돌리기도 한다.)
습관적으로 AI를 돌리고, 나는 한 숨 돌리고, 그렇게 해서 남는 건 뭘까?
개발자로 일한 지 5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5년 전부터 불과 작년 초까지만 해도 이러진 않았던 것 같다. 하루가 멀다하고 이슈는 들어오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오랜 시간 고민하고, 토론과 질문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배울 거리들이 생기고, 그렇게 경력을 쌓아가며 성장하는 개발자가 되었다.
AI의 등장 이후로, 이제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다. 개발하며 막히는 일들도 다 AI가 뚝딱 해결해주고, 문제의 원인이 뭐였는지, 어떤 원리로 해결되었는지에 대한 고찰은 뒤로 한 채 일단 빨리 개발해낸다. 그래야 ‘역시 빠르다’라는 평을 들을 수 있으니까.
쉬는 날마다 새로운 개발 아티클을 읽고 학습해보는 게 취미였는데, 이제는 어느 플랫폼이든 올라오는 글들의 90% 이상은 AI 관련이다. AI를 더 잘 쓰는 법을 배우는 것 이외에는 그 누구도 더 이상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스터디가 없어졌다. 책을 읽고 토론하는 스터디. AI가 더더욱 상용화되는 시기가 찾아오면, 모두 똑같이 두꺼운 종이로 된 개발서적을 하나씩 들고 주마다 모여 스터디를 하던 문화가 마치 과거의 유산처럼 여겨지지 않을까.
배우고 싶었던 것 같다. 아쉬움 없이 공부했던 10대 시절을 지나, 다시는 그렇게 공부할 수 없을 것이라 했지만 그래도 많은 열정을 쏟았던 개발자 취준생 시절을 지났다. 취업을 하고 나서도 3년 간은 열심히 수련했다. 개발자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사실 꽤 피곤하게 느껴졌지만, 배우고 그 지식을 적용하여 무언가 개선을 이뤄내면 뿌듯함이 느껴졌다.
그런데 요즘은, 성과나 보람을 느낀 기억이 크게 없다. 하루 종일, 거의 토큰이 만료될 때까지 AI를 돌려놓고 눈 깜짝할 새 기능을 뚝딱 완성해내는 것. ‘오늘도 엄청나게 일했다’라는 느낌은 들지만, 뭔가를 배웠다거나, 성장했다거나, 성취감을 느낀 적은 거의 없다.
AI의 도움으로 일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 AI가 있으니, 세 달 걸릴 일도 한 달이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 한 달 동안, 정신없이 AI를 돌려서 내가 기억도 못하는 코드들을 쏟아내고, 깊은 고민이 담기지 않았기에 유지보수성은 말할 것도 없고, 또 숨 돌릴 틈 없이 새로운 과제들이 쏟아진다. AI로 분명 프로덕트를 찍어내는 속도는 빨라졌지만, 사람 개발자의 업무 시간이 줄어들진 않는다.
이런 얘기들을 하면, 개발자는 원래 ‘코딩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라고들 한다. 그들의 해석에 따르면 내가 좋아하던 개발자는 그냥 코더, 퍼블리셔의 개념에 가까웠던 것이고, 어쩔 수 없이 도태되는 것 뿐이다. 그런데,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라는 말도 요즘엔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문제도 다 AI가 해결해주잖아? 문제 정의부터, 작업 계획과 실제 코딩까지, 다 AI가 해주는데.
이런 시대의 물결이, ‘급격한 변화’가 맞긴 한 건지 고민해본 적이 있다. 인터넷의 등장, 스마트폰의 탄생과 같이 AI의 상용화가 다신 돌아올 수 없는 패러다임이 될까? 인터넷 이전의 삶은 살아본 적 없지만, 스마트폰 등장 이전의 삶은 살아본 적이 있다. 사실 그때가 그립다.
AI는 인간을 무엇으로부터 해방시켰고, 어떤 진화를 이뤄냈는가? 내가 스마트폰 등장 이전의 삶 - 고작 15년 정도지만 - 을 그리워하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물론, 동물들도 그러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고차원적인 대화, 인간다운 소통, 사람들 간의 교류가 그리웠던 것 같다. 스마트폰까지는 그렇다 쳐도, SNS의 등장이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고 생각한다.
거기다 AI까지 가세해버린 요즘, 이제 사람들은 긴긴 이야기를 듣고 또 긴긴 이야기를 되돌려주는 것에 질린 것 같다. 누군가에게 대화를 걸거나 위로를 건네는 말조차 GPT에게 물어보고, 그런 감정적인 얘기들은 상대방에게도 아무 쓸모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나의 고민 역시 ‘감정 쓰레기통’으로 활용할 수 없는 GPT에게 쏟아낸다.
한 치의 오차 없이, 고생스런 과정 없이 채팅 한 번에 완벽하게 이뤄내고 싶은 것이다. 기술이든, 배움이든, 누군가와 마음이 통하는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든. 사실 그게 정답이 아닐 때도 많은데. 그 어떤 시행착오 없이 ‘딸깍’ 한 번으로 너무 쉽게 얻으려 하는 것이다. 고민으로부터의 해방, 정보의 평등을 불러오는 시대라 하지만, 이게 정말 좋은가?
써놓은 것만 보면 이토록 AI를 싫어하고 배척하는 것 같은데, 나도 매일매일 엄청나게 쓰고 있다. 사실, ‘억지로’ 쓰고 있다.
IT 업계 중에서도 나름 기술의 선두주자에 있고, 그 방면에선 가벼운 몸집으로 뛰어다니는 우리 회사에선 심지어 지난 한 달 간 누가누가 AI를 잘 쓰는지 공개 채널을 통해 보여주고, 공유하고, 함께 성장하는 일종의 컨테스트(?)를 개최했었다. 당연히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에겐 상금도.
모두가 이 지경인데, 뒤처지기 싫어서 AI를 어쩔 수 없이 공부하는 것이 맞다. 개발자로써 뒤처지기 무서운 것이 아니라, 완전히 이 세상에서 뒤처질까봐. 그러니까, 스마트폰이나 키오스크를 못 써서 외면 받자 결국 학원까지 등록하게 된 시니어들의 마음이 이런 게 아니었을까?
‘느림의 미학’, 느리게 생각하고 싶다. AI를 전혀 활용하지 않은 오롯한 한 인간의 생각으로. 오늘도 정말 오랜만에, 아무것도 참고하지 않은 채 글을 작성하는 1시간 동안 정말 깊이 몰입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무 글자도 없는 빈 파일에 키보드를 잡았을 때는 왠지 어색했는데, 한 줄 한 줄 써내려가다보니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이 물결은 나랑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려버렸다. 물론 안타까운 건 나 혼자다. 나는 여전히 느리게 배우고 싶고, 손쉽게 무언가를 얻고 싶지 않다. 뇌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어느 정도는 고통스러운 시간들 속에서 ‘나의 것’을 얻고 싶다. AI를 영원히 내 삶에서 배제해낼 순 없겠지만, 분명 나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 믿는다.
누군가에겐 그저 시대의 흐름을 좇지 못하고 투덜대는 바보같은 사람 1로 보일 수도 있다. 내 생각이 물론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단지 지친 것과는 완전히 다른 지금,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또 다른 나만의 방식으로 맞춰가려 한다.
무언가 성행하는 시기가 오면 그 저편에 무언가 결핍되기도 하는 법. ‘인간성의 복귀’, 이를 필요로 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설령 아무도 그 길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느 시기든 꾸준히 목소리 내는 사람은 있어왔고, 요즘엔 외면 당하는 듯한 꾸준함과 성실함도 다시 의미를 되찾는 순간이 올 수도 있으니까.
사실 별것도 아닌 일로 혼자 거창하게 써내려 갔는데, 몇 달 만에 AI의 터치가 묻지 않은 (심지어 맞춤법 검사기조차 돌리지 않은) 글을 쓰니 약간은 후련한 것 같다.